경남 국립김해박물관 전시실 2층 둘러보기.

1층 3실을 둘러보고 바로 2층으로 올라 가면 된다.
2층엔 4~7실이 있으며 각 실을 설명 하자면,

4실- 가야사람들의 삶
삼국지에 의하면 가야사람들은 누에치기, 옷감 제작, 오곡 재배를 하였다고 합니다. 왕은 궁성에서 생활하였으며, 김해 봉황대와 고령 지산동에서 왕궁터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주로 움집이나 초가에 살았고, 이층으로 다락집을 만들었습니다.









5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가야토기
가야토기는 도질토기와 연질토기로 나누어집니다.
도질토기는 저장,의례, 장식용으로, 연질토기는 일상생활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야토기는 가야산 이남의 낙동강 서쪽 지역에서 호남 동쪽 지역까지이며, 3세기대부터 6세 대까지 제작되었습니다.

6실- 철의 왕국 가야
철은 청동보다 단단하고 예리하기 때문에 실용성이 큰 재질입니다.
우리나라 서북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유적에서 중국 연나라(B.C 323~222년) 화폐인 명도전과 철제품이 출토되어 이 시기에 철기문화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의 성장 기반은 철 이었고, 철의 보급은 사회를 변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습니다.

7실- 해상왕국 가야
가야는 일찍부터 풍부하게 생산된 철을 매개로 한 교역을 위해 다양한 육로나 해로가 발달하였으며, 해상무역이 가장 활발하였습니다.
일본과는 쓰시마를 거쳐 일본 규슈로 연결하는 항로가 있었고 낙락,대방,마한과는 남해와 서해, 동예와는 동해를 이용하였습니다.

가야는 고구려 광개토대황비에서부터 조선의 아방강역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 기록에 그 존재와 실체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적의 발굴로 가야가 삼국에 뒤지지 않는 우수한 문화를 바탕으로 중국, 일본등과 활발한 대외교류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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